법원경매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유치권. 이 유치권은 대개 민법상 유치권을 지칭한다. 그러나 상법상 발생하는 유치권도 있는데, 이것이 바로 상사유치권이다.
상법에 따르면 상사유치권은 상인, 대리상인, 운송주선인, 위탁매매인, 육상과 해상 운송인이 가지는 권리로 각 상행위에서 발생한 채권을 신속하고 간결하게 변제받을 수 있도록 하� 위해 마련된 것이다.
상사유치권의 성립요건을 보면 ▲당사자 쌍방이 상인일 것 ▲유치 대상물이 채무자 소유일 것 ▲상행위로 발생한 채권일 것 ▲변제기에 있을 것 등이다. 가령 A라는 상인이 자기 명의의 배를 이용해 B라는 상인의 물건을 실어왔는데 그 운송대금을 결제일까지 지급받지 못할 경우, 상사유치권을 주장하며 물건(또는 유가증권)을 돌려주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름은 달라도 유치권이라는 이름이 공통분모로 자리매김돼 있어 경매 입찰자 입장에서는 쉽게 접근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사안에 따라 부동산에서도 주장되지만 상당 부분은 ‘물건’이나 ‘유가증권’에 대해 상사유치권이 인정되므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케이스는 아니다.
그러나 중기나 차량 등을 필요로 하는 입찰자는 물론, 소액으로 경매 투자를 시작해보려는 초심자라면 각자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적용할 수 있고 여기서 의외의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알아둬서 나쁠 것은 없다.
오늘 소개할 판례는 바로 이 상사유치권과 근저당권, 그리고 낙찰자에 관한 내용이다.
법원 판결문에 적시된 사실 관계를 보면, A씨는 2004년 7월 B회사로부터 모처에 소재한 상가 내 점포 1개소를 분양받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같은 해 9월 그 점포를 소재지로 한 부동산임대업 사업자등록을 마쳤다. A씨는 분양대금 중 1억3000여만 원을 납입했고 B사는 2006년 8월, A씨에게 점포를 인도했다.
한 달 뒤인 2006년 9월, B사는 위 점포를 포함한 상가건물 전체 점포에 관해 C은행 앞으로 소유권이전청구권가등기 및 근저당권설정등기를 해주고 75억원을 빌렸다. 이후 B사가 대출금 이자를 연체하기 시작하자 C은행은 2007년 5월을 기해 위 가등기에 기한 본등기를 마쳤다.
결국 B사는 채무초과로 무자력상태가 됐고 이에 따라 C은행의 빚을 갚고 위 가등기나 근저당권설정등기를 말소한 뒤 A씨에게 위 점포의 소유권이전등기를 해주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에 B사는 C은행을 상대로 2007년 7월, 위 가등기 및 본등기에 따른 청산금 청구의 소를 제기했고 소송 과정에서 위 가등기에 의한 본등기를 말소하기로 한 화해권고결정이 2008년 1월 3일을 기해 확정됐다.
이 화해권고결정 확정일 하루 전인 1월 2일, C은행은 남아있던 근저당권에 기해 임의경매를 신청했고, 그 경매절차에서 직접 낙찰받은 다음 2008년 9월 25일 매각대금을 완납함으로서 건물 내 점포 전체에 관한 소유권을 취득했다.
이 같은 사실관계에 기초해 심리를 맡은 원심법원에서는 A씨가 C은행에 대해 상사유치권을 근거로 대항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구체적인 설명은 없지만 뒤에 이어진 설명으로 볼 때 원심법원은 상사유치권의 성립시점을 A씨가 점포를 인도받은 2006년 8월로 판단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상고심을 맡은 대법원 판사진은 원심 판결에 대해 “상사유치권의 대항범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며 C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판사진은 “상사유치권이 성립하려면 점포에 대한 점유 요건 외에 피담보채권의 발생 요건도 갖춰져야 하고 또 이것으로 근저당권자에게 대항하려면 상사유치권 성립 시점이 근저당 시점보다 앞서야 한다”고 전제한 뒤 “이 사건에서 A씨의 상사유치권 성립 시점은 점포를 인도받은 2006년 8월이 아니라 B사가 C은행을 상대로 청산금 청구 소송을 제기한 2007년 7월로 봐야 하는 만큼 경매 근거의 근저당권에 후순하므로 낙찰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상의 내용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상사유치권은 선순위 근저당권자나, 선순위 근저당권에 기한 경매절차 상 낙찰자에 대해서는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 소개한 판례가 겉으로 볼 때는 복잡한 양상을 보이지만 단순히 정리하면 A씨의 상사유치권 성립시점은 결국 해당 부동산의 1순위 근저당권설정 시점보다 늦었고 이 때문에 낙찰자에게 유치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다만 A씨의 상사유치권 성립 시점에 대해서는 원심법원과 대법원이 그랬던 것처럼 의견이 갈릴 수 있지만 엄밀히 따져볼 때 B사가 기수령한 분양대금이나 이미 인도해 준 부동산에 상당하는 손해를 A씨에게 실제로 입힌 시점, 즉 해당 물건 소유권이 C은행으로 이전됐음을 인정한 청산금청구소송 제기시점이 곧 A씨의 상사유치권이 성립하는 시점으로 봐야 한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 판례에서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는 식의 소모적인 논란이나 판례의 자자구구를 해석하며 사후약방문 식의 의견을 개진하는 일이 아니라 이를 실제 경매시장에 적용해보는 것이다.
오늘 판례를 통해 상사유치권의 성격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민사유치권에 비해 극복하기 쉬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 부동산을 포함, 중기나 차량 등 현재 절차가 진행 중인 경매 물건에 설정돼 있는 유치권 중 상사유치권으로 볼 수 있는 케이스는 없는지를 찾아보는 게 더욱 생산적인 일이다.
민사유치권은 결정적으로 낙찰자가 ‘인수’를 해야 하기 때문에 경매 낙찰가를 떨어트리는 요인이 됐지만 상사유치권은 그 성립시점이 앞선 선순위 채권에 대해서는 사후 침탈이 불가능하다. 즉 날짜 순서만 잘 따져보면 낙찰자가 뜻하지 않은 피해를 입을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유치권’이라는 동일한 명찰을 달고 있는 수많은 경매물건에 대해 민사와 상사의 기준에 따른 재분류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이를 통해 유치권의 부작용 개선은 물론 경매시장을 찾는 실수요자 및 투자자들의 이익 창출 범위를 한층 넓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